


너희를 위해 남긴 지옥에 만족해?

경찰청장 :: 그의 시야가 가장 강한 권력자를
연상한 모양입니다.
♛ 달라진 점
그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지독하리만치 짙은 피비린내. 이제는 몸에 배어 체향이나 다름없습니다.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입에 넣은 것이 없으니 당연할까요. 목의 검은 자국은 처음 목이 떨어진 그날 이후로 줄곧 들러붙어 있습니다. 새롭게 추가되는 획들과 더불어 죽음을 거듭할수록 짙어지는 중입니다. 몸은 죽고, 다음 날 눈을 떠도, 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상흔만큼은 제게서 떨어지지 않고 저와 함께 죽음을 거듭하며. 이쯤 되니 이 검은 자국이 목에만 한정된 걸지는 모르겠지만요. 입안 사이로 언뜻 비치는 이빨은 거의 짐승에 것에 가까운 행색입니다. 뿌리째 뽑아내 보았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홍채의 짙은 청색은 처형장에 끌려들어 가는 횟수를 반복할수록 색이 빠져 흐리멍덩해지고. 위는 온통 기분 나쁘게 번들거릴 뿐입니다. 그 안광만은 반영의 영향에 의한 결과는 아닌 모양입니다.
충동적. 난폭함. 반영에 남은 제겐 제 본래의 성격을 제어할 이유조차 남지 않아 손과 발은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다만 6개월 후 마주한 그의 모습은 이 두 단어가 약간은 어색해 보입니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죄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내뱉는 말이란 싸늘하기만 할 뿐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체념이라도 한 듯. 저를 향한 도발에도 어째 둔한 반응. 이내 돌려지는 시선. 정신이 처형장에서 죽고 다시 복구되기를 반복하니 몸 또한 지쳐버린 모양이겠죠. 혹은 거기서 더 미쳐버렸거나.
♛ 경험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가 그를 증명하듯. 지난 기간, 입에서 만들어 낸 문장이 의미를 가진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교류도, 대화조차 없이 단 세명만 쫓아다닌 지난 6개월. 찾아내서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처형당하고. 살해당하고. 또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그리하여, 반영 밑바닥에서 죽고. 죽이기만을 반복하던 살인귀가 겪은 사망 횟수는 총 140회.
넷이 벌인 일로 재판이 열린 횟수는 100번. 그중 50번은 제가 처형장에 끌려 들어간 횟수. 그를 제외한 68일간 나이아 에이엔과 죽고, 죽이기를 40회 반복.
인간의 뼈를 가르는 감각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그들을 쫓는 이유를 규정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죽음이 무슨 대수일까요. 삶을 며칠 연장한다 한들 무엇이 바뀔까요. 검은 이미 목적을 잃어버린지 오래다만, 한시도 그 쇳덩이를 손에서 놓친 적은 없습니다. 그 위를 덮어쓴 핏물과 함께. 마치 제 죽음을 상관치 않고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이. 그에겐 이미 삶과 죽음이라는. 생명체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경계마저도 흐려져 버렸습니다.
후에 가서는 나이아를 죽이지 않는 이상, 그에게 죽기 직전까지만 칼질당한 후 그대로 숨이 다할 때 까지 몇 시간이고 방치당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 날이면 눈이 뒤집혀 그를 쫓는 날의 반복. 끝내 2주 전에는 사지의 힘줄이 절단당한 채 감옥에 끌려갔고, 그 밖으로 나온 것이 고작해야 폰들이 도착하기 며칠 전.
12일. 손 하나 까딱 못 하고 한 사람의 크기에 맞춰진 감옥 바닥에 누워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다른 이들이 알 수 있는 건 12일 후. 결국 나이아의 손에 살해당하고. 그 뒤로 그 세명을 찾아다니는 일을 관두었다는 사실뿐입니다.
너희가 겪을 잠시간의 평화 밑,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동안, 거울 밑은 내가 만든 지옥이었다.
♛ 소지품
진검, 목걸이 (이제는 차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 관계
✦ 참을 인 세 번이면 연락처 공개도 면한다! ✦
레이븐 알렌 ✦ 더블 윈윈은 무슨! 애초에 저놈이 자기 멋대로 들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해 버린 약속이라고. 거기다 각서까지 적어서! ...인정한다. 각서는 내가 제안한 꼴이지. 하지만 이런 사소한 종이 따위 알 게 뭐야? 내가, 나 자신이 한 말도 못 지킬 리 없잖아? 그러니 내가 받을 핸디캡도, 저놈이 받을 연락처도 결국 존재하지 않을 게 되는 셈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네가 얼마든지 알짱거려 봐. 어디 한번 내가 화를 내나 보자고. 그런데 저놈은 대체 언제까지 이 약속을 들먹일 셈이야? 저 자식 손에 놀아난 꼴 같아서 짜증 나 죽겠다고. 잠깐, 이젠 저 짜증 나고, 자긴 모든 걸 다 아는 척 구는 재수 없는 자식을 한대 치지도 못해?!
✦ 목줄을 잡을 이 ✦
나이아 에이엔 ✦ 들개라는 건 무릇 제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짐승들이다. 오직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난 그 길을 걷는 네 검을 알아. 네 수단을 알고.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네 검에 감사해. 경쟁자인 너를 존중하고. 그건 결코 분할 뿐인 패배가 아니었어. 하지만 말이다. 개라는 건 그 본래의 습성이 남아 있기 마련인지라, 결국 인간한테 머리를 숙이고 그것들이 내놓은 음식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굶어 죽을지언정 늑대가 될 수는 없을 족속들이지. 나이아, 난 네가 그 뒤의 실상까지 자각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들개를 자처할 바에는 목줄에 매여라. 늑대가 될 수 없다면 그를 사냥할 사냥개가 돼. 한낱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네 사냥감을 쫓아. 그 목줄을 거는 건 내가 될 테니.
뭐, 재력도. 권력도 챙겨 올 내게 알맞을 자명종이라면 이쯤은 되어야 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