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정. 욕심. 사심. 자멸. 이 외에 더 줘야 해?

경찰청장 :: 그의 시야가 가장 강한 권력자를
연상한 모양입니다.
♛ 달라진 점
겉껍질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지. 속까지 그 겉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더 자라고. 날을 세워 입을 다물어도 입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송곳니 끝자락을 제외하곤 여전히 인간의 외향입니다.
죽음이라는 사항에는 무덤덤한 기색이다만, 피스들이 돌아간 날 밤 행해졌던 한 번의 살인 이후로 더 이상 누굴 죽이려 들진 않는 모양입니다. 말과 행동. 쌓아온 바닥. 이룬 것. 재능. 원하던 목표. 사상. 저라는 사람, 아니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것의 소용을 못 느끼니까요. 이젠 검을 쥐여주어도 괜찮을 듯싶지만 그의 검은 이미 옛적에 잃어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결국 늦었죠. 모든 게.
무력감은 끈질기게 제 발치에 달라붙어 있고. 저는 그 모든 것을 수용했습니다. 죽고. 죽이는 일을 멈춰도 목가에 겹쳐 그어진 선만이 날이 갈수록 몸집을 불릴 뿐입니다. 짙은 먹색. 반영의 혈액 색입니다. 그것은 얼핏 보면 목이 잘려 흐른 핏자국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피비린내는 몸에서 빠지질 않고. 물 빠진 동공은 흐리멍덩한 백색. 점차적으로 흰자와의 구분마저 힘들어지는 중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어도 전과 같이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원체 곧게 뻗은 나무 같은 이었습니다. 제가 지킨 올곧음이 제 사인이 된 셈이죠. 부러진 나무는 자립하지 못하고. 이미 밑동만 남은 채. 그 위에서 다른 것이 자란다 한들 이전과 같은 모양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질지도요.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겠죠.
♛ 경험
현실로 돌아가야 할 아이들이 제 자리로 향하자마자 마이와 이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의 벚나무 밑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모두가 떠난 뒤인지라 둘을 제외하면 더 찍힐 발자국도 없는 벚꽃잎 위에서. 제가 보았던 것과 같이 마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죽인 이를 내려보다가, 눈을 감겨준 뒤. 저는 제 발로 처형장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처형장에서부터 그 이후의 며칠까지 내내 틀어박혀 울기만 했던 모양입니다. 남을 죽이는 건 그만뒀습니다. 검이 사라져서가 아닌 제 의지로요.
그 이후로 종종 마이를 찾아 간 모양입니다. 찾아가도 별로 하는 건 없었지만요. 옆의 말소리에 맞춰 두어 번 입을 열거나, 내준 음식을 먹거나. 혹은 춤을 보거나. 기관이 내려준 칭호라는 건 야속할 뿐이지만 그가 추는 춤은 좋다 생각합니다.
지난 육 개월 내내 나이아와 붙어있다시피 한 모양입니다. 기어코 손목까지 묶어버렸다만 어째 당사자는 불만이라곤 없는 순순한 투입니다. 저를 옆에 묶어두려는 이유 또한 묻지 않았습니다.
수면과 식사는 규칙적으로. 다른 이의 손길 덕인지 겉모습 또한 꽤나 멀끔한 채이고. 그 사이 중간중간 약하게 옛 모습이 비치기도 합니다. 제 손을 묶은 이가 시하브가 주관한 실험장에 들어가 사망하고. 저는 그 시체 곁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켜야 하던 일을 제외하곤 그리 악영향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일 년 전의 첫 번째, 육개월 전의 두 번째. 언젠가의 세 번째까지 부러져버려 더는 버티지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설령 그때가 되면 악마가 영원의 끝을 알려 줄 겁니다.
♛ 소지품
목걸이
♛ 관계
✦ 참을 인 세 번이면 연락처 공개도 면한다! ✦
레이븐 알렌 ✦ 더블 윈윈은 무슨! 애초에 저놈이 자기 멋대로 들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해 버린 약속이라고. 거기다 각서까지 적어서! ...인정한다. 각서는 내가 제안한 꼴이지. 하지만 이런 사소한 종이 따위 알 게 뭐야? 내가, 나 자신이 한 말도 못 지킬 리 없잖아? 그러니 내가 받을 핸디캡도, 저놈이 받을 연락처도 결국 존재하지 않을 게 되는 셈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네가 얼마든지 알짱거려 봐. 어디 한번 내가 화를 내나 보자고. 그런데 저놈은 대체 언제까지 이 약속을 들먹일 셈이야? 저 자식 손에 놀아난 꼴 같아서 짜증 나 죽겠다고. 잠깐, 이젠 저 짜증 나고, 자긴 모든 걸 다 아는 척 구는 재수 없는 자식을 한대 치지도 못해?!
✦ 목줄을 잡을 이 ✦
나이아 에이엔 ✦ 들개라는 건 무릇 제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짐승들이다. 오직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난 그 길을 걷는 네 검을 알아. 네 수단을 알고.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네 검에 감사해. 경쟁자인 너를 존중하고. 그건 결코 분할 뿐인 패배가 아니었어. 하지만 말이다. 개라는 건 그 본래의 습성이 남아 있기 마련인지라, 결국 인간한테 머리를 숙이고 그것들이 내놓은 음식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굶어 죽을지언정 늑대가 될 수는 없을 족속들이지. 나이아, 난 네가 그 뒤의 실상까지 자각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들개를 자처할 바에는 목줄에 매여라. 늑대가 될 수 없다면 그를 사냥할 사냥개가 돼. 한낱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네 사냥감을 쫓아. 그 목줄을 거는 건 내가 될 테니.
뭐, 재력도. 권력도 챙겨 올 내게 알맞을 자명종이라면 이쯤은 되어야 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