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 동경, 애정, 곁. 아직 더 필요해.

화력을 낼 수 있었으면 하는데~? 코앞에서 쾅!
터트리는 핸드캐논처럼!
♛ 달라진 점
왠지 모르게 이전보다 차분하고 깔끔해진 분위기. 전체적으로 몸에 생긴 것들이 더 자랐으나 메인이던 등의 가시만큼은 싹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대신 척추의 나란한 한 줄이 도드라졌고 꼬리뼈도 한참은 길어졌다. 상체 대부분의 왼편과 갈비뼈 선을 따라 검은 것이 덮였지만 팔을 제외하면 대체로 옷 안에 있으니 남에게 보일 일은 없는 듯. 강도는 같아도 가시에 비해 체온도 느껴지고 훨씬 판판하며 유연한 게 비늘 같은 모양새인데, 신체를 운용하는 걸 보면 대놓고 잘 됐다고 갑주로 써먹고 있다. 간혹 토해내는 열기는 이제 항상 뱃속에 머무르는지 체온도 높아졌고, 수시로 먹구름과 비슷한 연기를 뻐끔거린다. 그 탓에 가끔은 눈이 매워 필터가 달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목의 방어구에는 부러진 가시가 추가됐다. 순전히 본인 취향. 거리감없이 친밀한 몇몇의 앞 외엔 항상 착용 중.
이전보다 매캐해졌고, 피비린내는 줄었으며 종종 달달하고 알싸한 향을 달고 다닌다. 디아네에게 받은 향수인데 하도 아끼느라 정말 가끔만 뿌린다. 처음 사용했을 땐 멋모르고 방 안 가득 뿌려서 한참 만취한 사람처럼 뻗어 있었다.
지난 재판의 결과에 분노하던 것도 잠시. 대립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감은 여전하나 이내 타인에 대해서는 전부 포기해버렸다. 환멸 정도의 감정. 제 울타리 안에 든 사람 외 무관심하며 특히 무기력, 나태한 면모가 커졌다. 시하브의 실험에 참여하는 일 외엔 하릴없이 지내서 그런가. 화내는 것마저 귀찮아하며 상당히 무난한 일상을 보냈다. 그렇다고 지난 일을 싹 잊은 것도 아니고 성질이 죽거나 비관적인 관점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으니 여전한 사냥개.
서류상은 나이아 에이엔이지만 카얄이라는 성 아래 있기를 자처한다. 이미 죽어버렸는데 그깟 종이가 무슨 소용일까. 둘은 이제 완전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모양. 일심동체도 이런 유대감을 보이진 않는다.
꾸준히 단 한 사람에게 아바디아. 통칭 아디, 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영원. 불사를 선사할 실험체였으므로 당연한 의미일까. 본디 호칭에 아무 생각 없던 이지만 애칭은 애칭대로, 이름은 이름대로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특정한 이가 부를 시의 애칭을, 그리고 누군가가 부르는 제 이름을.
♛ 경험
1.하스미
저번의 일주일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시마무라 하스미의 손목에 구속구를 걸어 저와 한데 묶어버리더니 기어코 반년 내내 한시도 떼지 않고 옆에 달고 다녔다. 종종 서로 자기 일로 바빠 풀어줄 때는 있었지만. 목적은 감시와 보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이성을 놓았을 때 신나게 동조해 정신 나간 결과물에 어느 정도 일조했으므로. 이전의 성향이 남아있긴 했는지 책임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옛정 때문에 사람 덜 된 꼴을 차마 놔두지도 못한 모양.
더 이상 전투가 없다는 본능적인 불만은 남았는데 슬슬 시하브의 실험에 참여해야 하기도 했고. 순순히 보호자 역을 자처한 육 개월이었다. 매일 재우고, 깨우고, 그 스스로 누군지 자각시키고자 계속 말을 걸고. 그가 쥘 검을 찾을 때마다 제 손이라도 쥐여주고 달래는데 한참 익숙해졌다. 특히 밥을 그렇게 열심히 해먹였다고. 덕분이라 해야 할지 덩달아 자신까지 이전보다 말끔하고 성실해졌다.
반영의 주민이나 주변인 중 하스미의 지난 행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는 현재 자신의 소유니 이의 제기는 제게 하라며 양손에 단검을 쥐고 주장해 일축해버렸다.
2.가시
이전에 비해 텅 비어버린 등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 자신이 전부 뽑아버린 결과물. 불편했던 건지, 귀찮았던 건지 이유는 제대로 말해주지 않지만 그렇게 됐다. 처음 맨정신에 생으로 뽑아내다 13개째에 기절한 이후로 시하브에게 진통제를 얻어와 며칠에 한 번 잡초 취급하며 뽑았다.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던 게, 곁에 있는 이에게 도움을 제법 받았다. 간혹 처리하던 도중 잠들기도 했을 정도. 그나마 몸에 남은 쇳내는 아마 이 과정 때문이다. 최근은 비교적 더디게 자라나 싶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한두 개쯤은 도로 자라 있으니 그냥 등을 오려낸 옷을 입었다. 간혹 뽑아낸 가시가 아무 쓰레기통에 던져진 걸 볼 수 있다.
3.시하브
당연하게도 시하브의 실험에 참여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그 취지만큼은 확실히 인지했다. 반영에 갇힌 자가 현실로 나간다니. 지금의 저로선 현실에 어떠한 관심도 없지만 시하브가 하는 일이므로 기꺼이 팔을 내밀어 저를 죽일 약물을 투여받았다. 시체가 되어 무생물로 취급되어야 제약 없이 넘어갈거라는 가설이 이유. 그렇게 14번을 죽었고 마지막 1번은 3시간 뒤에 숨이 돌아왔다. 실험을 대하는 자세는 예비 용병이었을 적 의무의 취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제게 중요한 건 시하브의 신뢰가 담긴 눈빛과, 변함없이 네가 필요하다 말해주는 목소리뿐이다. 둘만 주어진다면 아마 뭐든 해낼 수 있겠지.
간혹 그에게 저와 같은 향이 묻어나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자신의 향수를 아껴두는 대신 혼자 남겨졌을 때 시하브의 곁으로 가 한참 향에 취해 있곤 했다.
4.오두막
부러 산책하지 않는 이상 거의 실내에서 지냈으며 심지어 문제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저와 색이 다른 피스를 마주치면 없는 사람 취급으로 지나친 뒤 방에 틀어박혔다.
시에린과 종종 마주치며 식사를 함께했다. 조련사라 그런지 대하기 편하던데 자신의 정체성이 미묘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날이 갈수록 토실해지는 초초를 여러 의미로 예뻐했더니 초초와도 꽤 친해졌다.
레이븐에게 여전히 식사를 대접받았다. 밥값은 하라는 말에 어느샌가 부쩍 길어진 머리칼을 다듬어 주는 걸로 타협을 봤는데, 노동에 비해 상당히 화려한 보상을 받은 감이 있다. 다른 피스들의 입에서 미슐랭… 5성급 호텔… 하는 단어들이 오가도 못 알아들은 척 매번 뻔뻔스레 잘 받아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마리-루와 꿀차를 마시며 여러 이야기로 속을 삭였다. 팔 거동이 어려워진 루를 도우며 좀 차분해진 듯. 일종의 공통점이 있기도 했고, 어떤 순간이든 제 눈엔 항상 상냥한 마리-루이므로 언제나 그랬듯 몇 없는 행복한 순간. 가끔 비행 연습이 펼쳐지면 구경을 나갔다. 많이 늘었나?
♛ 소지품
하스미의 목검, 단검 둘. 그외 자잘한 물건은 상자 하나에 담아 오두막 시하브 방에 놔뒀다. 노란 리본, 목걸이, 소원팔찌, 머리끈, 머리핀, 향수, 고스란히 내버려 둔 피안화와 메리골드.
♛ 관계
✦ Your Side ✦
디어 카사블랑카 ✦ 무슨 일이 있어도 디어 편이 될게. 시간이 지나 각자 걷는 길이 확고해져도 언제나 네 곁에 있을거야. 약속할까?
✦ 반영에 질리면, ✦
노에 이삭 ✦ 노에는 이런저런 일에 재미도 못 느끼고 금방 질린다지? 반영 세계마저 질리게 된다면 나랑 훈련... 물론 일반인 체력으로 나랑 같은 훈련은 무리고, 약식으로 재밌게 놀기로 했어. 맘놓고 질려도 좋아, 노에!
✦ 이상적인 상관 ✦
닐바서스 L. 알프헤임 ✦ 처음 자료를 조사하던 닐은 이런 상관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든든하고 이상적이라 한눈에 맘에 들었어. 간간히 반영 세계의 여러 사건으로 토론하거나 닐의 의견을 구하곤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짚어줘서 의식을 환기시킬 때 도움이 많이 돼. 마음씨도 태도도 여러모로 존경하는 황녀님. 이런걸 정신적 지주라고 하나? 곁에 있으면 차분하게 사고할 수 있다는 점도 정말 좋아해.
✦ 목줄에 걸릴 이 ✦
시마무라 하스미 ✦ 하스미가 날 사냥개라 말하더라고? 우린 무리지어 규칙도 제한도 없이 물어뜯으면 그만이라 들개를 자처했는데 말야. 뭐어, 명령 불복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목에 뭐 하나 걸고 있는 개가 맞긴 하지. 그렇지만 머리 위로 주인을 두긴 싫다는 저 녀석도 아직은 군견 티를 못 벗고 있다고. 같은 검을 쥐면 동등한 대련 상대 취급이라니, 절제와 규칙만 배우면서 밖으로 나와본 적 없다는 소리잖아. 물론 그걸 얕잡아 본다는 말은 아냐. 내 검이 그저 사람을 해치는 수단으로 쓰이며 나는 생존을 위한 기교나 쓰는 전장의 도구 쯤이라면 하스미의 검은 당당하며 자긍심이 넘치고… 항상 더 높은 경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수련하는 긍지 높은 길이지. 올곧아서 눈부실 정도로. 그 방향을 동경하고, 이 사람을 경쟁자 삼아 검을 겨뤄본 일이 자랑스러워. 내게 정식 주인은 말도 안되는 소리임에도 이런 이라면 그 목줄이라는 걸 제대로 걸어봐도 괜찮겠지 싶지만,
사냥개를 자명종 대신으로 쓰고 싶다면 재력도, 권력도, 나이도 더 챙겨서 와!




